Project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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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또는 피크닉과 함께했던 도시락이 파티의 주제로 가능할까?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양은 도시락을 난로 위에 데우고, 점심 시간에 친구들과 모여 설레는 마음으로

보온 도시락의 반찬통을 열던 푸근했던 추억이 다시 현실이 되었다.

1. 빨갛고 노랗고 파랗게 옻칠한 박성철 작가의 정겨운 도시락. 보는 것 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2. 도시락과 와인, 디저트를 맛보며 파티를 즐기는 작가들. 도시락이 파티의 주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작가들 조차 놀라워 했던 자리이다.


덥거나 춥거나, 잠시 쉴 틈도 없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동료들과 삼삼오오 모여 나눠 먹는 도시락은 바쁘게 보낸 오전 시간의 꿀맛 같은

보답이자 남은 오후를 견딜 수 있는 궁극의 힘이 된다. 도시락에 진수성찬이 담긴

것도 아니다. 콩자반과 무말랭이, 멸치볶음 등 집에서 먹는 밑반찬이 담겨 있을

뿐 인데, 유명 한식당에서 한 상 차려낸 밥 보다 든든하고 맛있다. 도시락을 싸준

사람의 사랑이 담겨 있고, 학창 시절 쉬는 시간에 황급히 까먹던 즐거운 추억이

남아 있기 때문일까.

소박한 밥과 반찬 뿐인 도시락을 깨꿋이 비우고 나면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이

콧노래 처럼 절로 나온다. 도예를 중심으로 회화와 목공예, 아트 퍼니처 등 라이

프스타일 관련 전시를 개최하며, 예술과 생활의 시작은 바로 ‘내 집의 밥상’이라

고 강조해 온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 조은숙 대표. 그녀의 청담동 갤러리에

서 독특하게도 도시락을 함께 나눠먹는 작은 파티가 열렸다.

김정옥, 류연희, 민덕영, 이능호, 최홍규, 이정미, 허명욱, 박미경, 박성철, 이세

용 등 12명의 작가들이 참석했는데, 그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자신이 만든 도시락

이 들려 있었다. 조은숙 대표는 “파티라고 거창할 필요가 있나요. 파티의 목적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서로 간의 정을 나누는 거잖아요. 이런 의미에서 도시락

만큼 파티에 잘 맞는 아이템도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도시락 파티

를 준비한 계기를 설명했다.

조은숙 대표는 갤러리의 한 켠에 뷔페 테이블을 마련하고 갓 지은 쌀밥을 비롯해

각종 밑반찬을 풍성하게 차려 두었다. 이 날의 게스트였던 작가들은 잘 차려진 어

느 파티의 음식에도 보이지 않았던 호평을 아끼지 않았다. 구수한 콩자반과 짭조

름한 쇠고기 장조림, 달콤한 오징어채 볶음과 쫀득한 무말랭이 무침 등을 보며 선

물이라도 받은 아이들 처럼 연신 들떠 있었다.

작가들은 각자의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담기 시작했다. 나무에 빨갛고 노랗게 옻

칠을 하거나, 도자기로 둥글게 빚거나, 은을 섬세하게 세공해 만든 각양각색의 도

시락은 일상의 음식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작가들의 도시락은 존재만으로도 오브제가 되잖아요. 형태와 소재를 표현한 모

습 좀 보세요. 하나같이 탄성이 나오죠. 하지만 도시락은 도시락이잖아요. 도시락

은 음식을 담고 서로 나눠 먹을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완성되죠.”

각자의 도시락에 음식을 담고 즐기는 모습 부터 각 작가들의 도시락을 직접 사용

함으로써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하나의 퍼포먼스 같은 풍경이었다. 도시락의 디자

인 만큼 담긴 음식은 각기 달랐다.

류연희 작가는 은 도시락에 밥과 반찬을 따로 담았는데, 소복한 하얀 쌀밥의 중앙

에 양파 장아찌 하나를 올려 놓은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최홍규 관장은

4칸으로 나눈 반찬통에 동그랑땡과 달걀말이, 두부구이 등을 담았는데 그 어떤

도시락 보다 풍성하게 담긴 모습이 정겨웠다. 허명욱 작가는 “도시락 파티는 지금

껏 생각하지 못했던 경험이예요. 서로의 도시락을 비교하고, 나눠 먹는 것이 기대

이상으로 즐겁네요. 학창시절의 추억 정도로만 여겼던 도시락 문화를 다시금 떠

올린 것도 의미있습니다. 앞으로 집에서도 종종 도시락에 밥을 차려 먹을까 생각

중이예요” 라며 파티의 즐거움을 전했다.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자리에는 격식이나 형식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소박하고 정겨운 도시락이라는 아이디어로 충분히 즐겁고 생기 넘치는 여름 밤의

파티였다.

3. 엄마 손 맛 나는 도시락 반찬이 산 살 차려진 뷔페 테이블. 조은숙 대표와 조선숙 실장, 김정옥 작가가 즐거워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4. 도자기로 만든 박미경 작가의 2단 도시락
5. 숟가락과 젓가락을 일체로 담을 수 있는 아이디어가 독특한 박예연 작가의 도시락

1. 김정옥 작가와 조은숙 대표가 즐거워 하며 서로의 도시락에 음식을 담고 있다.
2. 도시락 반찬 앞에서 각자의 추억을 떠올리며 아이들같이 신나했던 작가들.
왼쪽 부터 민덕영, 류연희, 박예연 작가.

3. 요리와 담음새로 정평이 자자한 조은숙 대표의 뷔페 테이블. 음식 본연의 색을 부각시키는 화이트 식기에 담았다.

4. 자신의 도시락에 음식을 담아 맛보는 작가들. 작가의 작품은 사용되어질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완성된다.
한평 오는 8월 29일 부터 9월 28일까지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나만의 도시락전>을 개최,
작가들의 도시락을 만나 볼 수 있다.

1. 임명환 작가의 단아한 화이트 도자 도시락
2. 모시를 깨끼 바느질해 만든 뚜껑이 독특한 김정옥 작가의 도자 도시락
3. 이종덕 작가의 방짜 유기 도시락. 태극 모양으로 나눈 반찬통이 독특하다.
4. 이세용 작가의 도시락. 작가는 반찬통 하나까지 도자로 만들었다.
5. 류연희 작가의 도시락. 순은 소재의 빛깔이 화사하다.
6. 허명욱 작가의 도시락. 나무에 옻칠한 도시락은 같은 소재의 쟁반과 매치해도 어울린다.

에디터 송정림/포토그래퍼 김황직(스튜디오 일)/어시스턴트 김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