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디자이너 조은숙의 아트 & 라이프스타일

디자이너 조은숙. 옷이 좋아 패션 디자이너를 했고, 커피와 카페가 좋아 카페 ‘플라스틱’을 운영했으며 공간에 관심이 생기면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했다. 인테리어와 예술 작품은 뗄 수 없는 관계이기에 자연스레 갤러리를 운영하는 갤러리스트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이렇게 30여 년간 쉬지 않고 축적한 귀한 경험을 보다 멋진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과 나누는 중이다. 에디터 신혜원 | 포토그래퍼 임태준

1 화가 제여란의 작품이 전시 중인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이곳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보이는 커다란 테이블에 조은숙 대표와 그녀의 파트너이자 동생인 조선숙 실장이 마주하고 있다.
2 패션 디자이너에서 카페 플라스틱의 주인으로, 그리고 공간 디자이너로, 또 갤러리스트로 디자인의 영역을 점점 확대해온 조은숙 대표. 회화 작품은 이강소 작품, 벤치는 박성철 작품, 브론즈 오브제는 프랑스의 부부 조각가 랄란느 작품.
3 예술의 시작을 식탁 위로 보는 조은숙 대표는 갤러리에 기획전 외에도 도자기 상설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이기조, 이능호 등의 도예가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조은숙 대표와의 첫만남을 위해 그녀의 갤러리를 찾았다. 청담동 안쪽 골목에 위치한 ‘조은숙의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개인적으로 에디터는 주인의 이름을 건 곳을 좋아한다. 작고 허름한 밥집이라도 주인의 이름이 간판에 걸려 있으면 막연한 신뢰가 생긴다. 이런 곳을 찾으면 확실히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게 나름의 지론이다. 보통 자신감이 아니고서는 쉽게 자신을 브랜드화하기는 힘든 일이다. 조은숙 대표의 얼굴을 보기도 전, 갤러리 입구에서부터 인터뷰이에 대한 호감도는 더욱 상승했다. 조은숙. 그녀는 1980~2000년대 디자인을 좀 안다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설사 그녀 이름은 모르더라도 도산공원 앞쪽에 있던 카페 ‘플라스틱’ 이야기를 꺼내면 모두 ‘아~’ 하는 반응을 보인다. 플라스틱이 어떤 곳이었나. 우리나라에 지금 같은 카페 문화가 생겨나기 전인 1998년 문을 열어 10년 넘게 트렌드세터들의 집결지로, 그리고 강남권의 랜드마크로서도 한몫 톡톡히 했던 곳 아니었던가.
“플라스틱을 오픈하기 전에는 패션 디자인이 천직인 줄만 알았었죠. 그러다 커피를 너무 좋아하고 카페 다니는 걸 지나치게 좋아해 플라스틱을 오픈하게 된 거예요.

1 추상화와 함께한 조은숙 대표. 대형 추상 작품에서 뿜어나오는 강한 에너지가 아담한 체구의 조은숙 대표에게서 느껴지는 열정과 에너지와 닮아 있다.
2 조은숙 대표와 1980년대 ‘조은숙 부티크’ 시절부터 늘 함께하고 있는 그녀의 파트너이자 동생 조선숙 실장의 오피스 공간.

그러다 이쪽으로 옮겨오면서 도산공원 앞쪽에 있던 카페를 정리했는데 정이 많이 들어서 그런가 ‘조은숙 부티크’ 문을 닫을 때보다 서운함이 크더라고요.”
에디터는 갤러리에서 만난 조은숙 대표에게 카페 플라스틱 이야기부터 물었다.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 갤러리스트 등 그녀의 다양한 타이틀이 만들어지는 데는 플라스틱이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조은숙 대표 역시 패션 디자인 외의 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심지어 오랫동안 파트너로 함께 일하고 있는 동생 조선숙 실장에게도 섬유예술을 전공하길 권유하고 졸업 이후 자신의 부티크로 들어오게 했다.
“언니는 커피를 너무 좋아했어요. 엄연히 이야기하면 카페에서 커피 마시길 좋아했죠. 하루에 카페를 10군데도 넘게 다니기도 했죠.”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가면 다른 건 안 보고 내내 카페를 찾아다니며 하루 종일 커피를 마셨어요. 카페는 사람들이 만나 동시대의 문화를 나눌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플라스틱을 열 때 주변에서 ‘드디어 하는구나’ 하는 반응이었어요.”
자매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하며 카페 문을 열게 된 사연을 이야기했다. 처음 몇 년은 패션 디자인과 카페 운영을 함께 했는데 나중에는 과감히 ‘조은숙 부티크’ 문을 닫았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건 의상실 문을 닫았는데도 그 일이 그다지 서운하지 않았던 건 직업을 바꿨다는 생각보다는 디자인의 영역을 넓힌다는 의지가 더 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카페를 통해 공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건축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가구 디자이너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면서 그녀는 이후 10년간 공간 디자인에 대한 공부를 적극적으로 했다. 학교에 가서 학위를 따는 공부가 아닌 건축 투어를 다니고 전문서적과 잡지를 두루 보고, 실제 자신과 지인들의 공간을 꾸며주는 생생한 공부였다. 워낙 어려서부터 집 안의 가구와 소품을 이렇게 저렇게 바꾸길 좋아하고 부티크에 온 손님이나 친구들 집에 가서 조언도 하고 실제 스타일링도 했었으니 그녀의 이런 노력이 갑작스런 이상 행동으로 보여지진 않았을 것이다. 다만 그녀 스스로 만족할 만큼 내공이 생겼을 때 이곳에 건물을 짓고 조선숙 실장과 함께 E&S 디자인 스튜디오를 오픈, 본격적인 인테리어 디자인과 데커레이션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엔 이곳 2층에 디자인 사무실을 열었어요. 물론, 2층에서도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중심으로 전시는 계속 진행했죠. 2년 정도 일을 하다 보니 공간에 빠질 수 없는 게 예술작품이더라고요. 예술작품을 본격적으로 다루고 싶은 마음에 1층으로 자리를 옮기고 이름도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로 바꾼 거예요.”

1 조은숙 대표의 집. 백남준, 이강소, 구자현, 김영연, 박성철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걸린 갤러리 버금가는 공간이지만 이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편안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건 조은숙 대표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이다.
2 조은숙 대표 서재의 윤영근 작품 아래 놓인 책상 위 풍경. 옛날 장기알과 십자가 등 그녀의 소소한 컬렉션이 멋스럽게 느껴진다.

조은숙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갤러리를 다시 한번 둘러봤다. 지금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에서
는 화가 제여란의 전시가 열리고 있다(11월 25일까지). 그리면서 지우고, 만들면서 망가뜨리기 등 부정의 무한 반복으로 완성된 제여란의 추상 작품이 구조적이면서 모던한 공간 속에 어우러지며 작품 속으로 더욱 몰입하게 된다. 조은숙 대표는 갤러리에서 주로 국내 작가 위주로 현대 추상미술을 선보이고 있다. 갤러리의 개성을 만들기 위해 억지로 정한 컨셉이 아닌 현대 추상미술은 그녀가 좋아하는 미술 세계라고 한다. 국내에서 좋은 작가를 발굴하는 것 또한 그녀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로 생각한다. 30년 경력을 가진 컬렉터의 심도 있는 눈에 들어온 작가와 작품이니 또다시 신뢰가 쌓였다.
“30년 전 친구, 동생, 동생의 친구 등 지인들의 작품을 하나씩 구입하면서 제 컬렉션이 시작됐어요. 그동안 세 번에 걸쳐 컬렉션을 수정했고 그러면서 제 취향이 정확해졌어요. 30년 만에 정리된 거죠. 어렵게 갖게 된 안목이에요. 저는 비록 여러 번의 오류를 범하며 컬렉터가 되긴 했지만 다른 이들은 컬렉션을 할 때 실패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제 노하우를 나누려고 합니다. 그게 갤러리스트의 역할이겠죠.”
그녀는 컬렉터가 되기 위해서는 경력과 비용, 수험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경력은 컬렉션을 하는 데 보낸 세월이며 비용은 작품을 구입하는 데 들인 비용, 수험료는 컬렉션을 수정할 때 드는 비용이라고 덧붙였다. 경력과 비용은 어쩔 수 없이 투자해야 할 것이지만 수험료는 자신과 같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줄일 수 있다는 것. 이곳에서 조은숙 대표와 그녀의 오랜 파트너 조선숙 실장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컨설팅하고 디자인하는 역할을 한다. 공간 속에 가구와 소품, 조명, 예술 작품은 물론 식탁 위에 올라가는 작은 그릇까지도 제안한다. 모두 조은숙 대표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1 서재 한쪽 벽면에는 조선숙 실장이 대학 졸업 작품으로 작업한 태피스트리 작품이 걸려 있다.
2 현관에서 만난 행잇올. 빈 벽면에 조선숙 실장이 붓 터치를 더해 작품 같은 아트월을 만들었고 여기에 행잇올 2개를 나란히 걸어 장식했다.
3 조은숙 대표의 침실. 벽지 대신 사용한 장용훈의 한지와 허달재의 동양화로 한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면서도 미니멀하고 모던한 느낌이 드는 공간이다.

같은 날 저녁 시간, 조은숙 대표는 에디터를 집으로 초대했다. 도예가 이기조와 이능호, 이능호 작가의 아내인 조각가 이문희, 그리고 현재 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화가 제여란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조은숙 대표가 직접 인테리어한 집에서 30년간 모아온 예술작품과 디자인 피스, 거기에 소문 자자한 그녀의 요리솜씨와 멋스러운 스타일링까지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다 한자리에서 만나기 힘든 예술가들의 모임에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궁금한 마음에 그녀의 집을 찾았다.
5년째 살고 있는 조은숙 대표의 집은 이미 <메종>(2007년 10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다.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자면 구조적으로 크게 바뀐 부분은 없다. 벽에 건 작품과 거실 테이블, 플로어 램프 정도만이 바뀌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집 분위기는 매우 달라 보인다. 미니멀하고 모던한 공간에 다락을 터서 천고를 높이고 여기에 고재로 서까래를 만들어 넣었다. 커튼 대신 한지 창을 달아 은은한 빛이 들어오게 한 점도 독특하다. 벽지나 페인트 대신 우리 한지를 발라 마감한 벽면에 현대미술 작품이 매치되니 그 콘트라스트 속에서 극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르 코르뷔지에의 LC1, 찰스&레이 임스의 체어와 행잇올, 김영연 작가의 테이블 등 국내외 디자이너의 ‘아트피스’라 할 만한 가구와 백남준, 허달재, 이강소, 구자현 등의 작가 작품들이 편안한 조화를 이룬다. ‘여백의 미가 있어 쉼이 있는 공간이어야 하고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화려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은숙, 조선숙 자매의 데커레이션 공식이 잘 녹아든 공간이다.

1 조은숙 대표 집에 모여 조은숙 스타일 파티를 즐긴 아티스트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조선숙 실장, 도예가 이기조, 화가 제여란, 조은숙 대표, 도예가 이능호, 조각가 이문희. 이 자리에서는 아트와 디자인, 공예의 경계와 크로스오버에 대한 이야기, 아트와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야기 등 예술을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2 거실 테이블 위 애피타이저로 차려놓은 올리브와 호두, 안동 버버리떡. 그릇은 모두 이능호 작품.
3 조은숙 대표가 직접 요리한 가지말이와 두부깻잎, 더덕 샐러드, 연근표고 고추장샐러드. 심플한 재료로 맛있고 멋스럽게 요리하는 것이 조은숙 스타일 요리다. 식탁 위 그릇은 이날의 게스트이기도 한 도예가 이기조와 이능호의 작품이다.

거실 테이블 위는 웰컴 드링크로 마련한 막걸리와 애피타이저가 될 올리브, 잣, 호두, 떡이 올려졌다. “이거 어때요? 조금 아까 1층에서 퍼온 건데…. 이제 테이블 위에 인위적으로 올려놓는 플라워 어레인지먼트는 식상하더라고요.”
역시 한발, 아니 몇 발은 앞서가는 트렌드세터답게 그녀는 꽃 장식 대신 접시 위에 정원에서 가져온 화초와 돌을 올려 조은숙 스타일의 센터피스를 완성한 것이다. 약속한 시간이 되자 게스트로 초대한 작가들이 10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모였다. 거실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식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더덕 샐러드, 연근표고 고추장샐러드, 가지말이와 두부깻잎 등 조은숙표 메뉴들이 식탁 위에 올려졌다. 게스트인 도예가 이기조와 이능호의 그릇 위에 담긴 메뉴는 감탄이 나올 만큼 보기 좋고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그 맛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10개월째 채식주의자로 살고 있어 그녀는 ‘풀밭’ 식단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했지만 고기가 그립지 않을 만큼 맛있었다. 게스트들이 모두 첫만남이라 자칫 서먹한 분위기일까 걱정했는데 맛있는 밥상 앞에서 금세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식탁이 풍성해야 예술이 산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밥 한끼 안 해먹고 무슨 인테리어며 예술작품을 논하겠어요.” 조은숙 대표는 예술의 시작점을 밥상으로 본다.
그녀가 예술작품 못지않게 그릇을 중요시 여기는 것, 테이블 미팅을 행복하게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날 식탁에서는 마치 조은숙 대표의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는 듯 예술가 각자의 작업 스타일부터 재료 이야기, 각 순수미술과 공예 그리고 디자인에 대한 아티스트들의 생각이 오고 갔고, 작업실 이야기에서 시작해 정원, 농사로 이어진 화제는 도예가 이기조가 매년 의식처럼 치른다는 김장 이야기에까지 이르렀다. 그러고도 밤이 늦도록 조은숙 대표와 조선숙 실장 그리고 세 명의 예술가와의 흥미로운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밥상의 힘’을 새삼 느낄 수 있었던 자리였다.
30년 동안 자연스럽고 여유롭게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폭넓은 경험을 하고 현재에 이른 조은숙 대표에게 비결을 물으니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싫어하는 것을 안하다 보니 지금에 이른 것 같다”고 답한다. 이것은 곧 ‘취향’을 갖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취향은 발전적인 뭔가를 다시 만들어낸다. 요즘 조은숙 대표는 채식 생활을 하는 까닭에 야채만으로 폼 나는 상을 차리고 이를 나누는 일에 빠져 있다. 지금까지 그랬듯 그녀의 취향이 또 무엇을 만들어낼지 또다시 궁금해진다.

[출처] Maison (2011년 11월호) 에디터 신혜원 | 포토그래퍼 임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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