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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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바꾸는 날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대표가 자신의 집에 그림을 바꿔 걸던 날.

거실에 있던 그림은 침실로, 다이닝룸에 있던 작품은 같은 톤의 다른 그림으로,

거실과 현관에는 새로운 그림이 걸렸다. 예술 작품이 지닌 에너지를 느꼈던 시간.

사진 위에 채색한 허명욱 작가의 작품 3점을 모아 걸어

200호짜리 그림의 효과를 냈다.

코너의 작품은 백남준의 Video Cello(1996)

테이블은 김영연 作

사이드테이블은 허명욱 作

(HEREN 2013년 3월호)

한지를 바른 격자문으로 비치는 햇살과 서까래 때문인지 공간이 유난히 안온했다.

거실에 들어서자 푸른 빛의 거대한 추상화가 시선을 잡는다.

패션 디자이너 출신의 조은숙 대표는 2007년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를 열었다.

청담동 안쪽 골목에 위치한 갤러리는 그림 뿐 아니라그릇과 가구가 상설 전시되어

언뜻 보면 인테리어숍인가 싶다. 일상에서 아트를 누리라는 취지로 연 공예 갤러리이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인테리어 컨설팅을 할 때 그림, 그릇, 오브제를 일상과 어떻게 이어줄 것인지를 고민한다.

집을 찬찬히 둘러 보니 벽에 걸린 그림부터 의자 한 점, 벽에 걸린 행어, 물컵 하나까지

또 하나의 살아있는 갤러리 같다. 워낙 조은숙 대표는 패션계에 몸담았던 시절부터

남의 집 살림살이를 바꿔주는게 취미였다. 기운이 없다가도 그릇을 골라주고, 가구를 옮기는데 간섭을 하고 있자면

힘이 펄펄 났을 정도다. 그러니 자신의 집에는 오죽했겠나. 이곳으로 이사온지 6년쯤 되었는데

거실의 그림은 네 번이나 바꾸었다. 맘에 드는 작품을 발견했을 때나 공간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행여 그렇지 않더라도 1년쯤 지나면 그림을 바꿔건다. 100호, 200호 되는 그림도 소품 한 점을 대하듯

과감하게 바꾸는 이유는 그림이 주는 변화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인테리어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가구를 옮기거나 벽지며 타일을 바꾸고 달라진 공간에서 산뜻한 희열을 느낀다면

그림을 걸었을 때의 힘은 그보다 몇 수 위다. 그것이 예술작품이 지닌 강렬한 에너지라는 것.

오늘은 벽에 걸린 이강소 작가의 추상화를 허명욱 작가의 작품으로 바꾸는 날. 이집의 거실 그림의 역사를 정리하자면,

처음에는 거실 소파 위로 독일 작가 마르쿠스 린넨브링크(Markus Linnenbrink)의 색실을 촘촘히 넣은 듯한

컬러풀한 그림이 걸려 있었고, 다음으로는 130호 크기의 동양화가 허달재의 수묵화가 걸렸다.

이후 200호짜리 대형 그림을 걸기 위해 소파를 베란다 쪽으로 틀어 놓았는데 그 작품이 바로 이강소의 추상화였다.

이강소의 회화는 회화적인 터치가 풍기는 미니멀리즘 추상. 반면 이번에 건 허명욱 작가의 작품은

사진을 캔버스에 프린트한 수 그 위에 부드러운 컬러의 아크릴로 채색한 것으로

기존의 걸려 있던 것과 느낌도 다르고 컬러도 다채롭다.

그림을 바꾸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구를 옮기는 것보다 자유롭다. 물론 벽의 사이즈라는 물리적 제한이 있지만

식탁, 참대 처럼 용도가 구분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거실에 걸었던 이강소의 회화는 안방으로 옮기고,

거실 그림 밑에 있었던 아트 퍼니처는 주방 쪽으로 배치할 수 있는 것.

금속 공예가 박성철의 작품인 아트 퍼니처는 채색한 게 아니로 불로 구운 작은 금속판을 조합하여 만든 것으로

옆으로 누이면 벤치로, 세우면 오브제가 된다.

거실에서 벤치로 쓰던 것을 세워서 조각처럼 두니 코너에 힘이 생겼다.

before                                                             after

그녀는 아트퍼니처를 누리라고 조언한다. 삶의 흔적이 묻어가는 아트 작품은 최고라는 것.

장 푸르베의 의자, 찰스&레이 임스의 행어 등 디자이너의 물건도 마찬가지.

도자기 작가의 물컵이나 화병 등만 써봐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침실에 있던 허달재의 수묵화를 내리고, 거실에 있던 이강소의 푸른빛 그림을 걸자 공간이 달라졌다.

재빘는 점은 침대나 침구, 사이드 테이블까지 워낙 차분한 분위기여서 오히려 수묵화가 맞지 않나 싶었는데

이강소의 작품이 제자리인 양 어울린 것. 푸른빛 그림은 고요한 평화를 주는 듯 했다.

이는 거실에 허명욱 작가의 그림 3점을 틈 없이 이어 마치 하나인 듯 걸었는데 크기가 커지면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색감이 강해 어울릴까 싶었는데 막상 작품을 걸자 의구심이 단박에 사라졌다. 기자가 신기해하자 그녀가 공감한다.

“옷도 입어봐야 알듯이 그림도 걸었을 때 느낌이 예상과 다를 때가 많아요. 신기하고 흥미롭죠.

그것이 현대미술이 갖는 매력이기도 합니다. 그림을 선택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그림을 인테리어 요소라고 생각하고

컬러를 맞추거나 비슷한 느낌으로 고르는 것이예요. 그림으로 데코를 하려고 하지 마세요.

저 역시 시행착오를 겼고 깨달은 것인데 그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그림이 돋보이지 않고, 작품 특유의 힘이 반감됩니다.”

그림을 걸 때 노하우라면 사이즈든 스타일이든 과감하게 시도하라는 것.

특히 초보들은 100호, 200호짜리 작품을 선택하는 데 주저하게 마련인데,

획기적인 것을 걸면 오히려 강한 생동감과 파워가 전해져 예술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작은 회화 작품보다 사이즈가 있는 사진이나 판화를 추천하는 편이다.

인테리어를 위해 그림을 거는 것은 반대한다. 그러나 그림에 좋은 배경은 있다.

같은 화이트 별지라도 펄감이 있거나 디테일이 강한 재질은 그림을 걸기에 적당하지 않다.

갤러리가 그러하듯 화이트 컬러가 가장 무난한데 아이보리, 그레이 화이트 등으로 변화를 주는 것도 좋다고 한다.

그녀의 집은 벽지 대신 한지로 도배를 했다. 때로는 그림을 위해 가벽을 세우거나 작품 주변의 가구 배치를 바꾸기도 한다.

” 5년 전 인테리어 컨설팅을 해 준 집이 있어요.

그림 한 점 없던 집 거실에 도자기 오브제와 그림을 놓자고 권했지요.

그분들은 일상에 들어온 작품으로 예술품에 눈을 떴답니다.”

더불어 그녀는 아트 퍼니처를 누리라고 조언한다. 삶의 흔적이 묻어가는 아트 작품은 최고라는 것.

장 프루베의 의자, 찰스&레이 임스의 행어 등 디자이너의 물건도 마찬가지.

도자기 작가의 물컵이나 화병 등만 써봐도 알아챌 수 있다고 한다.

작품의 힘, 사전 취재를 위해 갤러리를 찾았을 때 다과를 내주었던 이무규 작가의 종잇장처럼 얇은 나무 접시와

이능호 작가의 찻잔을 매만지며 감탄했던 기억이 났다.

editor   이나래    ㅣ    photographer   민희기

출처 : HEREN 201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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