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백진이 얻어낸 조형적 성과는 무엇일까. 그는 컨템퍼러리아트에 걸맞은 형식 못지않게 작품의 내용을 확보했다. 파편의 부활! 백진의 예술은 ‘부가물(parergon)’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던 흙 장르의 허물을 벗고 새로운 아트로 재탄생한 것이다. 여기에는 짜릿한 내용의 복선이 깔려 있다. 백진 스스로가 말하길, 파편은 기억의 또 다른 이름이다. 꿈 혹은 무의식 저편으로 흩어져 있는 기억! 그렇다. 흙을 주물러 작은 조각을 만들고, 그 조각을 불에 구워 다시 애초에 흙을 주물렀던 손의 감각을 되살려 ‘채집’ 하는 일. 이야말로 기억의 회로 시스템과 그대로 통한다. 기억이란 본디 불완전한 파편이 아니던가. 그러니 그 조각들로 퍼즐을 맞춰보는 일 또한 기억의 미덕이다.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기억은 아이러니하다. 조각난 상태로 존재하는 기억이 우리의 정체성을 조각나지 않도록 붙잡아주고 있다.”

기억이란 흔히 어떤 특정한 물건으로 ‘기호화(encoding)’되어 있다. 그리고 기억은 그 기호(사물)를 통해 ‘저장’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진의 기억은 과연 무엇일까. 작품의 표면에서는 그 어떤 단서도 찾을 수 없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의 기억의 저장고는 흙이 아닐까 싶다. 창작의 시초에 흙을 만지던 체험, 그 시간과 공간의 기억 말이다. 흙의 기억, 작은 조각처럼 파편화된 기억, 그 기억은 다시 작가가 ‘채집’으로 경작한 캔버스와 입체의 영토에 비밀처럼 내장되어 있다. 백진의 기억은 넘실대는 선과 면의 리듬을 타고, 저 온화한 빛에 실려 있으니…. 기억은 ‘기억의 기억’ 속으로.

 

김복기(아트인컬처 대표. 경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