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Description

19

갤러리 대표

조은숙이 선택한 청사초롱

“우리 생활 깊숙이, 늘상 사용됐던 청사초롱에는

우리 조상의 삶이 있었고 인생이 스며있다.”

 

오늘은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고 있다.  나는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목기, 다완, 문방사우 등 옛 것을 좋아한다.

이것들을 묵묵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그것에 담긴 실용성과 미감에 흠뻑 빠져들곤 한다.

그 중애서도 누군가가 만들었고 또 누군가가 사용하였던 청사초롱.

이젠 틀만 남아 있고 청색, 홍색의 천은 없어져 버린지 오래지만 그 형태의 비례와 조형미가 내 눈과 내 영혼에 깊이 각인되어버렸고,

이젠 내가 새로운 공예품을 만날 때 마다 판단을 하는 기준이 되곤 한다.

 

먼저, 이 조형미는 어떠한가? 우리 조선 목가구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미니멀한 것을 고르자면

바로 사방탁자가 아닐까. 그런데 초롱의 형태는 그에 못지않은 단순함을 지녔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게다가 초롱은 우리 조상들이 사용했던 움직이는 등(燈)이다. 일방적으로 도시를 비추는 가로등이 아니라,

달과 별과 반딧불과 함께 순하게 어우러지는 이 등을 사용했다.

 

바로 움직이는 펜던트 라는 것.

그 풍경을 떠올려 보자니 검은 밤을 비추는 낭만이 그립다.

급한 일이 있으면 잰 발로 빨리 움직이면 그만이고 시 한수가 떠오르면 쉬었다 가는 선비의 발길이 그리워진다.

 

요즘 같은 모바일 시대에 생각해도, 몇 백 년을  앞선 우리 선조들이 만든 모바일 펜던트는

실용적인 것은 물론이고 예술품으로도 가치를 둘 수 있는 멋이 있었다.

 

그 사용 범위는 어떠한가. 신랑이 말을 타고 신부를 맞으러 떠날 때와 신부가 가마를 타고 시집 올 때에도 길을 비췄던 물건이다.

혼례같은 생사 뿐 아니라 우리 생활 깊숙이, 늘상 사용됐던 청사 초롱에는

우리 조상의 삶이 있었고 인생이 스며 있다.

처음에 이 움직이는 등을 만들었을 때를 상상해 보면 얼마나 놀랍고 반갑고 편리한 물건이었을지.

짐작되고도 남는다. 물론 이 실용적인 등의 조형미와 디자인은 지금 당장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으리라.

 

워낙 등을 좋아하는 나는 이것저것 많은 등을 사용한다.

그러나 인생의 희노애락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촛농이 똑똑 떨어지는 이 청사초롱이다.

이 빛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이 빛은 소통의 도구이기도 하다. 요즘 우리는 이메일이나 모바일 폰으로 소통한다.

하지만 청사초롱이 쓰이던 과거의 빛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날 때에도

두 얼굴과 마음을 비춰준 소통과 만남의 도구였다.

이 빛이 있는 곳이라면 뒷마당이든 정자 밑이든

그 곳은 만남의 장소가 되어 그들을 아우르고 보살펴 주었을 것이다.

움직일 때마다 출렁거리는 이 빛의 물결은

잔잔한 파도와도 같이 일렁이듯 춤을 추며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또 다른 날의 빛은 내일을 예고하는 빛이기도 하고, 빛에 비춰진 사람의 마음에 따라 기쁨과 슬픔, 의로움과 투쟁일 수도 있었다.

 

언제나 대낮같은 도시에서만 살아온 나는 이 등을 보면서 많은 인생을 본다.

아니 상상하고 그린다.

아무리 빛으로 붙잡으려 해도 밤이 깊으면 새벽이 온다.

날이 밝으면 쓸모없어진 등은 아무 소리 없이 또 밤을 기다린다.

이 등을 보고 있노라면 자연 법칙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보이지 않는 밤을 보이는 세계로 만들어 준 등!

 

그 시절을 살아 보지도 않는 난 왜 그 때 그 시절이 그리운 걸까?

밤과 빛이 만들어 낸 이 이원성이 그립다.

text by Cho Eunsook   l    photographers by Moon Sungjin